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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제의 위기에서 바라본 트럼프 2기의 위험성과 한반도 핵위기

대안공간 공공연-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5 사회분석 기획강좌 01 ‘위태로운 세계: 트럼프 2기에서 한반도 핵위기 까지’ 백승욱 교수 강연 지상중계

만약 트럼프와 김정은이 푸틴의 중재 하에 남한을 패싱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하고 그 결과로 미국에 대한 전략핵은 폐기하거나 축소하되 남한에 대한 전술핵은 회담의제에서 제외한다면 어떨까?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중재한 푸틴이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여 우크라이나에서 점령한 영토를 가진 채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어떨까? 트럼프가 이러한 ‘연이은‘ 성과에 힘입어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 하에 이스라엘-가자 전쟁 종전을 이끌어내면 어떨까?
트럼프가 이러한 ‘3대 과제’를 빠른 시일 내에 완수할 수 있다면 그가 원하는 노벨 평화상도 그리 먼 일이 아닐 것이다.
2025년 3월 16일 대안공간공공연 마치홀에서 대안공간공공연과 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공동주최로 열린 백승욱 교수 초청 강연 ‘위태로운 세계: 트럼프 2기에서 한반도 핵위기 까지’에서 백승욱 교수는 이러한 도발적인 시나리오를 청중들에게 질문하면서 강연을 열었다. 이 날 강연에서 백승욱 교수는 2024년 12월 3일 계엄 사태 이후 탄핵국면과 한국정치로 운을 떼고, 트럼프 2기에서 한반도 핵위기 까지 연결된 위기, 얄타구상의 등장과 얄타체제의 이행, 역사적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제도 변천, 20세기 자유주의 제도 질서, 연결된 위기의 구역적-위계적 차별성, 트럼프 2기와 얄타체제 해체의 본격화, 김정은 시대 한반도 핵위기까지 망라했다.
백승욱 교수는 여러 자극적인 뉴스로 소비되는 트럼프 2기가 단순히 미국과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을 개별 국가들의 경제적 피해라는 측면 뿐 아니라 지금까지 세계를 특징 지어 온 ‘체제’자체가 흔들리는 근본적 위기라는 것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러한 체제의 위기는 한반도에서 핵무장 국가를 이웃한 한국의 현재와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백승욱 교수는 위기의 시기일 수록 시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두 발을 단단히 내려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한 ‘버티는 힘’은 세계의 변화를 모색하고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청중에게 독려했다.

트럼프 2기가 부수려 하는 것과 위기의 ‘네 구역’

20세기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역사

백승욱 교수는 20세기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지금의 위기를 이해하기 위한 틀을 제시했다.
영국의 세계 지배와 개인의 권리, 시장의 자유에 근거한 19세기 고전 자유주의는 20세기 들어 영국 헤게모니의 위기와 함께 그 한계를 맞이했다. 고전 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각종 사회주의 운동과 자본주의·사회주의 두 체제 간 협력을 통해 안정적인 세계 통치를 추구하는 두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20세기 미국의 ‘시장 개입적 자유주의’다. 20세기 미국에서는 개인기업을 법적 틀 안에 넣는 ‘법인’ 개념이 도입되었고, 표준화된 회계 시스템을 바탕으로 법인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관리가 행정부의 중요한 역할로 자리 잡았다. 또한, 19세기까지 권리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던 개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집단적 권리’의 형태로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사용자와 노동조합의 관계를 관리하고 개입하는 일 또한 행정부의 중요한 역할이 되었다.
미국식 법인 자본주의는 강력한 행정부를 기반으로 성장과 고용을 연계하여 관리하는 체제로 발전하였으며, 이는 미국 헤게모니와 자유무역을 축으로 하여 세계적인 경제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국제적으로는 20세기 초에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국가들이 자율적인 경제 주체로 등장하면서 자유무역 체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국가 간 전쟁은 지양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질서는 이를 주도한 정책의 이름을 따라 ‘뉴딜 질서’라 불리기도 하며, 미국, 영국, 소련 지도자들이 모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질서를 논의한 얄타 회담의 이름을 따 ‘얄타 체제’라고도 불린다. 사회주의 운동은 20세기 법인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적응하거나 소멸했다.

‘못하게 하는 힘’을 부수기

백승욱 교수는 트럼프 2기를 일컫어 ‘부수러 온 자’라고 일갈했다. 여기서 트럼프가 부수는 것은 미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만들어진 ’강한 행정부‘ 근본적으로는 이를 규정 짓는 뉴딜 질서, 다시 말해 얄타 체제이다. 금융의 자유로운 이동을 규제한 뉴딜 질서와 달리, 규제를 완화하고 금융 세계화를 촉진한 신자유주의 하에서 이미 시장 개입적 자유주의는 쇠퇴했다. 그러나 ‘아메리카 넘버원’으로 불리는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 질서는 여전히 얄타 체제의 흔적 아래 이어져 왔다.
트럼프는 이와 달리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세계 질서를 관장하는 미국이 아니라 외부에 개입하지 않고 미국만 잘 사는 질서, 넓게는 ‘아메리카 대륙’만 잘 사는 질서를 표방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회 뿐 아니라 대통령이 마음대로 전횡을 부리지 ‘못하게 하는 힘’ 즉 전통적으로 형성된 ‘강한 행정부’를 파괴해야 한다.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적 질서를 행정부에 이식하려고 하는 일론 머스크의 행보는 이른바 ‘딥스테이트 척결’이라는 트럼프의 이러한 이해와 일치한다.

위기의 네 구역

트럼프가 있는 것을 부순 다음 건설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트럼프의 파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관적 구상은 없다. 그렇다면 얄타 체제의 해체는 2차 대전 이전의 세계, 즉 강대국들이 세력권을 나누어 분할 지배하는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백승욱 교수는 이러한 위기의 함의가 세계에서 각자 속해있는 네 공간에 따라 다르게 체감된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구역은 얄타 체제 하의 다자적 안보지대, 유럽이다. 두 번째는 미완의 잠재적 다자적 안보지대, (동)아시아 이다. 세 번째는 세력균형 외교 하의 핵 강대국이다. 네 번째는 무너지는 발전도상국, 구 비동맹/제3세계이다. 지금의 위기는 세 번째와 네 번째 사이의 갈등이 커지고 전쟁의 임계점이 낮아지는 형태로 드러난다. 이는 첫 번째 구역의 내부 전쟁이나 세 번째와 첫 번째 구역 사이의 전쟁으로 특징 지어졌던 한 세기 전의 모습과는 다른 양상이다. 지금으로서는 두 번째와 네 번째에 속해있는 국가들이 위기를 더욱 크게 체감할 수밖에 없다. 한국과 우크라이나가 각각 그 사례이다.
백승욱 교수는 이와 같이 트럼프 2기가 부수려 하는 것은 현재를 특징 짓는 근본적인 세계 질서의 해체와 연결되어 있으며 미래에 대한 대안이 없는 지금 ‘일단 부수고 보자’는 트럼프식 접근은 미래로의 진전이 아닌 과거로의 퇴보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변화한 김정은 정권과 트럼프 2기의 ‘위험한 조합‘, 그리고 한반도 핵위기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의 함의

백승욱 교수는 북한이 러시아와 협력하여 우크라이나 전선에 군대를 파병한 것에 대해 네 가지 주요 함의를 설명했다.
첫째, 지정학적 함의이다. 만약 트럼프가 북한 핵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가자 전쟁을 동시에 해결하려 한다면, 북한의 대러 군사 협력 강화는 이러한 상황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 지정학적 고려에 따라 트럼프가 북한과 직접 협상하려 한다면, 대미 전략 핵무기는 감축하거나 폐기하되, 대남 전술 핵무기는 협상 의제에서 제외할 수 있다. 이 경우, 대남 전술 핵에 대한 미국의 억지력의 대가로 미국은 남한에 대해 방위비 협상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다.
둘째, 군사기술적 함의이다. 러시아가 파병의 대가로 북한에 고도의 핵무기 기술(SLBM: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MIRV: 다탄두 미사일)을 이전할 가능성은 낮지만, 이미 중국에 이전한 방공미사일 S-400을 북한에 제공할 수 있다. 이 경우, 트럼프는 러시아를 매개로 러시아, 중국, 북한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전략적 장점으로 여길 수 있다.
셋째, 군사운용적 함의이다. 파병된 군대 중 2개 여단 규모의 군인이 돌아오면, 북한 사회에서 새로운 엘리트층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
넷째, 한반도 핵위기의 함의이다. 대남 전술 핵이 북미 협상 의제에서 제외됨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핵위협은 오히려 커질 수 있지만, 러시아라는 중재자가 등장함으로써 긴장이 일부 완화되거나 지연될 수도 있다.

대남 전술핵 개발과 남한 패싱

백승욱 교수는 북한의 대러 군사협력 강화와 우크라이나 전장 파병이 가진 네 가지 함의는 트럼프 2기와 변화한 북한 정권이라는 ‘위험한 조합’하에서 한반도 핵위기에 더욱 위협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시기 북한은 기존 ‘우리민족제일주의‘를 폐기하고 ’우리국가제일주의‘를 표방했다. 대남혁명노선을 폐기하고 북한과 남한이 각각 다른 국가임을 천명했다. 2018년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던 하노이 회담 이후 남한을 외교 상대국으로 인정하고 파트너 삼으려는 어떠한 신뢰도 없어졌다.
북한은 이른바 ’하노이 노딜‘ 이후 두 가지 교훈을 얻었는데 하나는 앞서 언급한 남한에 대한 신뢰 상실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과 직접협상을 하기에 북한이 가진 핵전력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 에서 북한은 전략핵 고도화와 전술핵 개발에 몰두했다. 미국이나 남한의 위협에 의해 반응적으로 핵보유를 포기하지 않은 게 아니라, 적극적인 국가 전략의 일환으로서 핵전력을 발전시켰다는 이야기다.
백승욱 교수는 이전에는 대만 위기를 시작으로 한반도 핵위기가 본격화 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이제는 중국 변수보다 미국변수가 더욱 부상하면서 오히려 한반도 핵위기가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렇게 변화한 세계정세와 한반도 정세에서 한국은 어떤 길을 왜 선택할 것인지, 그 가운데서 사회운동의 길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청중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물었다. 백승욱 교수는 이러한 질문이 트럼프의 전횡을 기존 행정부 관료들이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없을 트럼프 2기 시기를 맞이한 지금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위중한 질문임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버티고 나아가는 힘에 관하여

긴 시간 동안 세계체제의 위기의 측면에서 트럼프 2기의 위험성과 한반도 핵위기를 설명한 백승욱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 하며 혼란의 시대에서 버티고 나아가는 힘을 이야기했다. 다른 한편 ‘한번 크게 무너져야 새 질서가 등장할 수 있다’는 ‘대란대치’식 관점을 비판하며 지난 시기 사회주의 역사를 반성한다면 무너뜨리는 힘이 아닌 건설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뚜렷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트럼프와 같이 세계의 도처에서 ‘부수는 자’들이 등장하는 지금 사회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백승욱 교수가 이번 강연에서 역설한 것처럼 빠른 결론을 바라며 조급해 하기 보다는 차분히 앞을 내다보며 올바로 나아가는 힘이 필요 할 때다. 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